한국 문학 40주년 회고 기념 모임에 참석한 문인(文人)들임시수도기념관
한국전쟁 중 문화예술의 중심지, 부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피란민들이 전쟁 피해가 없는 부산, 대구 등지로 모여들었습니다. 이 피란민들 중에는 예술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온 피란 예술가들은 어려운 여건에 속에서도 붓과 펜을 들어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부산은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동광동 거리 풍경(뷔엔나 다방)임시수도기념관
피란예술가들의 종합 문화 공간, 다방
다방은 한국 전쟁 중 피란 예술가들에게 아지트이자 위안의 공간이자 다양한 문화 활동이 펼쳐지는 종합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란을 왔지만 부산에는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남포동이나 광복동 등 부산의 도심지에 있었던 밀다원, 금강, 스타, 춘추, 녹원, 청구, 르네상스, 에덴다방 등 많은 다방에서 그림 전시회, 출판기념회, 강습회, 송별회,추모회 등의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특히 피란 온 많은 예술가들은 광복동 등 부산의 중심지에 자리한 다방들을 찾아 친목 모임을 가지며 교류하기도 하였습니다.
제1회 현대미술작가초대전 리플릿임시수도기념관
전쟁과 피란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
피란 미술 작가들은 부산에서도 꾸준히 개인전을 개최하는 한편으로 부산과 경남에서 활동하던 지역 작가들과 함께 크고 작은 단체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전쟁 중에도 예술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피란지 부산에서 열정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한편 소설가와 시인들은 전쟁 후 이때의 피란 경험을 소재로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김동리가 1955년에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한 '밀다원시대'가 대표적 작품입니다.
제2회 토벽 동인전 리플릿임시수도기념관
한국 전쟁 중 부산은 예술혼이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전쟁 중 부산에서 작가들은 '동인전(同人展)'을 소규모 화랑이나 다방에서 수시로 열었습니다. '토벽동인전', '신사실파전', '후반기전(後半期展)' 등은 이 무렵에 개최된 대표적인 동인전, 즉 단체전들입니다. 1952년 5월에는 '제1회 후반기전'이 미화당백화점 내 화랑에서, 1953년 10월에는 '제2회 토벽동인전(土壁同人展)'이 휘가로다방에서 각각 개최되었습니다.
중앙 화단과 부산 및 경남 지역 화단이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이게 되면서 국가 주도의 다양한 단체전이 결성되었습니다. 1953년 5월 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된 '현대미술작가초대전'은 전쟁 기간 중 부산에서 열린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소수의 작품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고희동, 김은호, 노수현, 변관식, 장우성, 김환기, 도상봉, 이마동,김경성 등 당대 최고의 동양화가, 서양화가, 조각가들이 이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였습니다.
초도(焦土)의 시임시수도기념관
전쟁 중 고단한 피란 생활 중에도 예술에 대한 작가들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서양화가들은 캔버스 천을 구하기가 어려워 종이, 하드보드, 합판, 은박지 등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그 중 이중섭은 피란 시절에 이러한 예술적 열정을 극명하게 보인 대표적인 작가로 불릴 수 있습니다.
『현대문학』 4월호 '차례'임시수도기념관
부산으로 피란을 온 이중섭이 돈이 없어 미술 재료를 구하지 못하자 자신의 집 부근의 미군 부대의 쓰레기장에서 담배나 초콜릿을 싼 은박지를 구해 그 위에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생계마저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도 이중섭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중섭도 당시 예술가들의 무대였던 밀다원, 금강다방 등에서 다른 피란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는데, 시인 김춘수는 이중섭을 만난 후 '내가 만난 이중섭'이라는 시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전혁림 회화소품전 리플릿(후면)임시수도기념관
경상남도 통영 출신의 추상화가 전혁림(1916-2010)도 부산으로 피란 온 예술가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1952년에 광복동의 밀다원 다방에서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같은 지역 출신인 시인 유치환(1908-1967)은 ‘혁림(爀林)의 예술(藝術)’이란 제목의 글을 써서 전혁림의 개인전을 축하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밀다원시대임시수도기념관
한국의 저명한 소설가 김동리도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활동한 예술가였습니다. '밀다원시대(密茶苑時代)'는 그가 19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와서 지은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1955년에 간행된 문학잡지 "현대문학(現代文學)" 4월호에 실렸습니다.
의 삽화임시수도기념관
'밀다원시대'는 김동리가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는 동안 겪었던 일들을 거의 실제에 가깝게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다방 밀다원에서 동료 문인들을 만나 서로의 아픔을 위로한 것도 그 동료 중 한 명이 자살한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당시 다방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이란 참화를 직접 겪은 예술인들의 생활과 의식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한편 김동리 외에도 황순원, 김환기, 이중섭 등 당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와 화가들이 이 다방을 찾았습니다.
최신부산시가지도 중 대한도기주식회사임시수도기념관
대한도기주식회사와 피난 화가들
대한도기주식회사(大韓陶器株式會社)는 해방 이후 부산 영도에 설립된 도자기 회사로, 한국전쟁 이후 부산으로 피란을 왔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었던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김은호, 변관식, 이중섭 등 당시 화단을 대표했던 화가들 다수가 이곳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한도기 그림접시 - 진양 풍경 , 변관식 그림임시수도기념관
이상범과 함께 근대기 한국의 동양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되는 변관식 역시 대한도기주식회사에서 화가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도자 접시에 그의 장기인 산수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현재 가장 많이 남아 전하는 대한도기주식회사의 핸드페인팅 도자기들은 김은호 화풍의 영향이 많이 반영된 풍속 인물화가 그려진 것들입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LP임시수도기념관
임시수도 부산과 대중가요
전쟁으로 인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작곡가, 작사가 혹은 가수들 또한 부산으로 몰려들어 많은 대중가요가 제작되고 새로운 가수들이 탄생했습니다. 피란지 부산에서는 피란살이의 고됨을 표현한 노래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경상도 아가씨',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이때 제작된 대표적 노래들입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주제가 LP임시수도기념관
부산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에는 생활난을 겪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피란민들 혹은 피란민들을 따뜻하게 대우해 주었던 부산 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40계단’이나 ‘영도다리’, ‘국제시장’ 등 당시 피란민들의 대표적인 삶의 터전들이 그 노랫말에 자주 등장합니다.
영도다리 밑 점집 (부산사진집)임시수도기념관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1953년에 오리엔트레코드에서 발매한 한 앨범에 실린 곡입니다. 전쟁 중에 발표된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이 노래에는 1·4 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가족 그리고 연인인 금순이와 이별한 뒤에 영도다리 난간에 기대어 하늘만 쳐다보며 이들을 그리워하는 어느 피란민의 애환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 노래는 여전히 많은 부산사람들과 국민들에 의해 불리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