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핸드백

벨 에포크라 불리던 20세기 초는 예술, 문화, 과학 그리고 패션에서의 창의적 열정적인 기운이 팽배하였습니다. 이 시기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하여 새로운 양식의 창조를 지향했던 예술사조로 '새로운(nouveau) 예술(art)'를 의미하는 아르누보가 탄생하게 됩니다. 담쟁이 덩굴풀 같은 식물의 형태를 연상하게 하는 유동적인 곡선을 즐겨 사용해 리듬감과 생동감을 나타낸 것이 큰 특징입니다.

이 때 탄생한 가방은 주로 아르누보 사조와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둥근 곡선이 많이 사용된 이 벨벳 가방들은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드레스의 페디코트 안에 착용하였던 안주머니의 형태를 연상시킵니다. 이 시기의 가방들은 ‘둥근 곡선’과 ‘철 구슬 장식’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철 구슬은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유행했으며, 20세기까지 핸드백 장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여성들이 댄스파티에 갈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때 등장한 댄스펄스는 춤을 출 때도 더욱 돋보이도록 화려한 태슬이나 수술이 달린 형태가 특징적이었습니다. 길이가 긴 손잡이 끈은 손목에 끼는 형태로 건채로 춤을 출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치 액세서리처럼 보이지만 각 태슬 안에 숨겨진 작은 공간에는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립스틱 등의 화장품이나 담배를 넣는 공간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엔지니어링적인 면은 댄스펄스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차 대전 중 군인들에게 미친 독가스의 엄청난 영향 때문에 영국 정부는 군인과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광범위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독가스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실질적인 공포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가스 공격을 대비하여 방독면을 모든 민간인에게 지급하며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영국 정부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항상 방독면을 휴대할 것을 국민들에 당부하였습니다.

방독면마스크는 직사각형 카드보드 상자에 담겨 있었고, 상자의 뚜껑 안쪽에는 사용법이 적혀 있었으며,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끈도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이 가방은 가방 안쪽에 쓰여진 이름으로 한 소년의 것으로 추측되나, 초기 여성들은 이 상자가 패셔너블하지 않다는 이유로 잘 가지고 다니지 않다가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리폼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백화점이나 기성복 가게에서는 여성들의 소지품과 방독면 마스크를 같이 넣을 수 있는 기성 핸드백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실용성을 강조한 유틸리티클로스와 새로운 스타일의 ‘뉴룩’이 탄생하였습니다. 유틸리티 클로스란 옷감을 절약하고 유용성을 강조한 디자인을 말합니다. 모든 의류 생산업자들은 정해진 양의 직물로 옷을 만들어야 히였기에, 한 의류회사가 1년에 50가지 이상의 스타일을 생산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또한, 민간인들은 20개의 쿠폰을 배급 받았고 주어진 쿠폰으로만 의복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룩의 등장과 함께 플라스틱과 같은 신소재가 탄생하였고, 동시에 핸드백 시장에서도 붐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업체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더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기존에는 핸드백에 사용되지 않았던 루사이트, 퍼스펙스, 금속, 플라스틱 등의 다양한 재료로 만든 핸드백이 등장하였으나, 아름다움 외관과는 달리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1960년대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와 미국의 우주 비행의 성공으로 우주에 대한 다양한 관심사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패션에서도 역시 우주시대의 영향으로 '스페이스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이스룩은 별, 달, 공상 과학소설 등을 모티프로 하며 헬멧형의 모자와 기하학적인 선 처리로 미래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주시대의 특징적 디자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디자이너 피에르가르뎅이 손꼽힙니다. 피에르가르뎅의 미래주의적이고 초현대적인 디자인은 주로 여성의 몸보다는 기하하적 도형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광택 있는 에나멜 가죽에 커다란 원형 크롬 손잡이가 달린 이 인상적인 핸드백은 대담한 기하학적 형태를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은 건축, 가구, 가정용품, 패션디자인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패션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개념을 부정하고 전통을 배제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실험적 성격이 짙은 전위 예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디자인, 색상, 형태가 전위적이거나 기능성과 실용성이 무시된 것이 특징적입니다.

이 클러치 역시 당시의 유행하던 형태나 색상을 따르기보다는 ‘실비아 파리’라는 제목의 패션잡지 외양을 차용함으로써, 이 백의 디자인이 패션의 첨단이라는 사실을 재치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타임즈 등 다양한 모양의 잡지 클러치들이 유행했습니다.

1980년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고 생활 수준과 소득이 향상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의 슈트에는 남성적인 요소가 강조되어 어깨를 강조한 새로운 슈트 스타일로 빅 룩(big look)이 유행하였습니다.이러한 스타일은 여성의 ‘성공을 위한 옷차림(dress for success)'이라 불리우며 1980년대의 전 시기에 사랑받았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보니 캐신은 1962년 코치에 입사하면서, 미국의 핸드백 디자인에 큰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자신의 현대적인 감성을 핸드백 디자인에 적용하여 바쁜 현대 여성을 위한 기능적인 가방들을 창조한 것입니다.  전통적인 남성용 서류가방을 바탕으로 한 이 가방은 '캐신 캐리백'이라 불리웠으며, 내장된 지갑과 지퍼 달린 주머니들, 접는 가방, 따로 혹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레이어드 디자인이 특징이었습니다.